HOME > >

 

[기후변화소식] [한겨례] 30조톤 인공물, 60만개 땅 조각…지구에 무슨 짓을 한 걸까
 글쓴이 : 관리자
작성일 : 2017-04-11 09:54   조회 : 9,965  

[미래] 곽노필의 미래창


 지구 역사 1년중 문명은 1분이지만
 어느 생물종보다 엄청난 변화 유발

 인공물, 1㎡당 50㎏으로 지구 뒤덮고
 도로는 생태계를 마디마디 갈라놔
1㎢도 안되는 땅 조각이 전체 절반
 기후변화 170배, 멸종 1000배 빨라져

 미래 알려면 지나간 일 먼저 살피자
 힘에 걸맞은 책임감이 지구 살린다

 

   과학자들은 보통 생물 종의 평균 수명을 200만~500만년으로 본다. 이를 기준으로 보면 20만년 전에 등장한 호모 사피엔스의 종 수명은 10분의 1도 지나지 않았다. 46억년 지구 역사를 1년으로 치면 불과 23분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12월31일 밤 11시37분에야 인류가 탄생했다는 얘기다. 인류가 문명의 꽃을 피우기 시작한 농경시대로부터 따지면, 1분 남짓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 인류는 어느 생물 종보다도 큰 변화를 지구에 초래했다. 자신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지구 자원에 손을 댄 결과다. 인류 때문에 6번째 대멸종이 시작됐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다. 그 짧은 세월 동안 도대체 지구에서 무슨 일을 벌인 것일까?
   지구 구성요소들은 생물권, 암석권, 대기권, 수권 등 몇 개의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인류는 이 가운데 생물권에 속한다. 그런데 생물권의 다른 생물들과 다른 점이 있다. 자연에 없던 것을 새롭게 만들어내거나, 자연을 인간 편의에 맞게 변형시킨다는 점이다. ‘문명’은 이를 총칭하는 말이다. 문명을 통해 생겨난 물질들을 기술권이라 부른다. 따라서 기술권은 곧 인류가 지구를 변형시킨 총량인 셈이다. 건물이나 도로, 다리 같은 인프라 시설은 물론 농장이나 광산처럼 사람의 손길을 거쳐 변형된 자연, 쓰다 버리거나 수명이 다한 폐기물, 농작물이나 가축 등 살아 있는 것들이 모두 기술권에 포함된다.
   이 모든 것들을 합치면 얼마나 될까? 영국 레스터대 연구진이 이런 별난 계산을 해본 결과,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물의 총량은 30조톤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됐다. 연구진은 “이는 1㎡당 50㎏ 남짓의 인공물들로 지구 표면 전체가 뒤덮이는 것과 같다”고 설명한다. 인류 전체 몸무게의 10만배에 이르는 질량이다.
   엄청난 기술권은 기본적으로 엄청난 인구에서 비롯된다. 정확도를 검증할 방도는 없지만 연구진 추정에 따르면, 지금의 인류는 인간 문명에 앞서 지구를 지배했던 모든 대형 육상 척추동물보다 2배 이상 많다. 수렵채취 시절보다 1000배, 산업혁명 이전보다 10배나 많은 인구가 지구에서 살 수 있도록 떠받쳐주는 힘이 바로 기술권이라고 연구진은 설명한다.
   문제는 기술권은 생물권에 비해 재활용률이 크게 낮다는 점이다. 대부분 잔류물이나 폐기물로 지구촌 어딘가에서 흉물스럽게 남아 있다. 쓰레기 매립지는 대표적 사례다. 연구진은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먼 훗날 기술화석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기술권은 새로운 지질학적 개념 ‘인류세’와 맞닿아 있다. 인류세는 현대에 들어 지구 기후와 생태계가 큰 변화를 겪으면서, 1만년 전 농경문화로 시작된 홀로세와 다른 지질학적 층이 생겨나고 있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인류세 주장자들은 첫 번째 핵실험이 실시된 1945년 이후를 인류세의 시작점으로 본다. 이들은 인류세를 대표하는 물질들로 방사성 물질, 대기 중 이산화탄소, 플라스틱, 콘크리트 등을 꼽는다. 한 해 무려 600억마리가 소비되는 치킨에서 나오는 닭뼈를 인류세의 최대 지질학적 특징으로 꼽는 사람도 있다. 인류세 지지자인 얀 잘라시에비치는 “테크노스피어는 지질학적으로 어리지만 놀라운 속도로 진화해가고 있다. 이미 우리 행성에 깊은 자국을 남겼다”고 말한다. 

도로가 갈라놓은 지구. 파란색은 도로가 많지 않아 자연 생태계가 잘 보존된 곳, 빨간색은 밀집된 도로로 자연 생태계가 망가진 지역이다. 과학저널 <사이언스>

도로가 갈라놓은 지구. 파란색은 도로가 많지 않아 자연 생태계가 잘 보존된 곳, 빨간색은 밀집된 도로로 자연 생태계가 망가진 지역이다. 과학저널 <사이언스>

   인간은 뭔가를 만들거나 쌓는 한편에서, 자연을 깎고 파헤쳐 왔다. 길은 대표적인 사례다. 길은 인간의 활동 영역을 획기적으로 넓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자연 생태계엔 상처 자국이다. 도로에 들어서는 순간 동물들의 목숨은 위협을 받는다. 숱한 동물들이 로드킬의 희생양이 된다. 한 국제합동연구팀이 계산한 결과, 지구에는 현재 3600만㎞의 도로가 있다. 이 도로들은 지구 생태계를 60만 조각으로 쪼개놓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넓이가 1㎢ 미만인 땅 조각이 전체의 절반을 넘는다. 100㎢가 넘는 조각은 전체의 7%에 불과하다. 상처가 나지 않은 대형 조각은 북극권의 툰드라, 시베리아 오지 등 일부에 불과하다.
   특히 산업혁명 이후 동물 생태계에 대한 위협의 정도가 크게 높아졌다. 세계자연기금의 지구생명 보고서에 따르면 1970~2012년 사이에 전세계 척추동물 개체수가 58% 줄었다. 이대로 가면 2020년에는 불과 50년 사이에 척추동물 개체수가 3분의 2나 사라지는 사태를 맞는다고 한다. 인간 문명으로 생물 다양성이 무너지는 속도는 자연 상태에서보다 1000배나 빠르다는 주장도 있다. 인간이 개입하기 전에는 연간 100만종당 0.1종이 멸종해왔으나, 지금은 연간 100만종당 100종씩 멸종하고 있다는 것이다.
   위협받기는 식물도 마찬가지다. 원시림의 경우를 보자. 2000년 1280만㎢였던 삼림 면적은 2001년에서 2013년 사이 7.2%나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대한민국 땅덩어리의 9배나 되는 규모다. 파라과이, 라오스, 캄보디아, 적도 기니 등 4개국은 20년 안에 원시림을 모두 잃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인간 사회의 확장에 따르는 벌목, 경작, 산불이 원시림 소멸의 주요 원인이다. 산업혁명 이전에 인간이 개발한 땅은 육지의 5%에 불과했으나 이제는 55%로 절반을 웃돈다. 지구생태네트워크(GBN)는 “현재 인류가 소비하는 생태자원을 계속 감당하려면 지구가 1.6개 필요하다”고 경고한다.

 

   인간의 경제활동은 결국 기후를 뒤흔든다. 그 힘은 어느 정도일까? 오스트레일리아와 스웨덴 합동연구팀이 계산해보니 자연 상태의 뭇 생물들이 기후에 미치는 영향력보다 무려 170배나 큰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수천년 동안 자연과 우주의 힘은 100년에 섭씨 0.01도의 속도로 기후를 변화시켰다. 반면 지난 45년간 인간이 유발한 온실가스는 100년에 1.7도의 속도로 지구 기온을 상승시켰다. 연구진은 이를 ‘인류세 방정식’이라고 이름붙였다. 연구를 이끈 윌 스테픈 교수는 “인류가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력은 점진적 변화라기보다는 운석 충돌에 더 가깝다”라고 말한다. 산업활동을 통해 인류세에 축적된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무게는 거의 1조톤, 전체 탄소의 3분의 1에 이른다. 지구를 1미터 두께로 온통 덮어버릴 수 있는 양이라고 한다.
   이산화탄소 급증에 따른 바다의 급속한 산성화(ph농도의 하락)도 걱정거리다.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가 바닷물에 녹으면 바다가 산성화한다. 이는 탄산칼슘으로 몸을 지탱하는 바다 생물에겐 생명의 위협이다. 산성화한 바닷물이 탄산칼슘을 녹여버리기 때문이다.
   인간 번영을 위한 활동이 도리어 인간 생존을 위협하는 부메랑이 돼 돌아오고 있다. 인간이 살아 있는 지구 생태계에 저지른 행위를 생각하면 ‘호모 사피엔스’는 적절치 않다. 그래서 오스트레일리아의 작가 겸 과학자 줄리언 크립은 인간의 학명을 호모 수일라우단스(자아숭배자), 호모 엑스테르미나우스(종결자), 호모 델루수스(자기기만자) 등으로 바꾸자고 주장한다. 유럽의 계몽주의 사상가 볼테르는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고 했다. 그런데 인간은 힘은 키웠지만 책임감은 키우지 못했다. 책임감이 없는 힘은 치명적인 흉기가 될 수 있다. 인류 멸절의 핵전쟁 위험성을 가리키는 ‘종말 시계’가 자정 2분30초 전까지 다다랐다는 경고의 목소리는 그 한 사례다.
   자신의 행위에 걸맞은 책임감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인류가 지구에 한 지난 일들을 되짚어보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다. 앞을 바라보는 것(포캐스팅)만으로는 미래 설계를 완성할 수 없다. 뒤를 돌아보고 잘못된 점을 짚어보는 성찰(백캐스팅)이 덧붙여져야 올바른 미래 로드맵이 나올 수 있다. 동양의 성현들은 진작부터 ‘미래를 알고 싶으면, 먼저 지나간 일을 살피라’(<명심보감>)라고 가르쳐 왔다. 미래는 하루하루 지나간 과거들이 축적해 만드는 결과이므로, 과거에 어떻게 살았느냐가 미래를 좌우한다는 교훈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지구가 아닌 우주에 미래 인류의 새로운 정착지를 건설하자는 주장은 인류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인류에게 주어진 시간은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재앙을 막을 기회는 있다. 지난해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은 3년 연속 정체를 기록했다. 세계 경제가 연간 3% 안팎씩 성장하고 있음에도 화석연료에서 나오는 온실가스 배출량은 더는 늘어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지구 평균기온은 3년 연속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이는 지구온난화 피해를 막기 위해선 정체가 아니라 급감이 필요함을 일깨워준다. 2015년 파리 기후정상회의에서 세계 지도자들은 지구온난화의 정도를 산업혁명 이전 대비 섭씨 2도 이내로 제한하자는 데 공감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더 강력하고 구체적인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군의 과학자들은 최근 과학저널 <사이언스>를 통해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제로 상태로 만드는 탄소법을 만들자며, 탄소 제로 달성으로 가는 두 가지 경로를 제안했다. 한쪽 길은 탄소배출 감축로다. 2020년을 온실가스 배출 정점기로 설정하고, 그 이후 10년마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절반씩 줄이는 것이다. 다른 쪽 길은 탄소배출 없는 전기 생산로다. 5~7년마다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두배씩 늘리자는 게 핵심이다. 과연 인류는 더 늦기 전에, 지구 살리기에 온몸을 던질 수 있을까?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790004.html#csidx9d51860803611a39de6852b6eac9500